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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국제연애

독일에서 독일어로 연애하기

by 니나:) 2017.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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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연결고리



요즘들어 독일어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런 형편없는 독일어 실력에도 연애는 순조롭게 되가고 있음에 스스로 감격하며 오늘의 주제를 '너와 나의 연결고리'로 정했다. 말도 잘 안통하는 우리 둘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무엇이 우리를 지속 가능한 연인으로 남게 했을까.


우리가 평소에 한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수준은 보통 굉장히 낮다. 깊은 곳까지 가끔 들어가기도 하지만 금새 지칠정도로 상당한 에너지와 인내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대화가 아닐 때는 아쉽지만 대화중에 더 설명하는 것을 포기할때도 있고 방향을 아에 바꾸기도 한다.


대부분의 국제 커플들은 영어를 사용하거나 둘중 하나가 다른 한쪽의 모국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켄은 영어를 아주 잘 하지만, 내 영어실력은 고졸 학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독일어는 이제 공부한지 2년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놀라울 정도로 생경한 언어를 서른이 넘어 알파벳부터 배우기 시작했으니 내 언어수준은 말 다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연애를 해?


데이트 신청인지도 모르고 따라간 '영화 함께 보기'가 발목을 잡기 전까진 나도 믿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연애가 가능할거라고는 생각해본적이 없다. 나처럼 말이 많은 여자가 또 있을까 싶은데, 정말 말도 안되게 어느 순간부터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게 생겨버렸다. 어느날부터 그 추운 겨울에 두터운 잠바떼기 대신 코트를 입기 시작했고 립스틱 색깔마저 신경썼다. 흔한 대사 중 하나인 '다시는 사랑에 빠질수 없을 것 같아.' 라던가 '이제 사랑은 지쳤어.' 를 입에 달고 다닐 때였다. 삼년이 넘는 시간동안 연애 허무주의에 빠져서 세상 모든 남자는 친구 아니면 일을 같이 하는 사람 정도로 구분하고 있었고 말이다. 그랬던 내가 다시 연애라니, 그것도 난생 처음 국제연애라니 미친거였을까?


무엇이 나를 그토록 끌어당겼는지 모르겠다. 켄은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지만 매력적인 남자는 사실 차고 넘치지 않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켄과 나에겐 굉장히 공통 분모가 많은데 그 당시에는 그런 것들을 알아낼 방법도 별로 없었다. 지금보다 더 말도 잘 안통했었고 문화도 다르고 나는 철벽이란 철벽은 다 치고 있었으니까.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도 정도껏이지, 우리의 초반 데이트는 그야말로 하나의 블랙 코메디처럼 굉장히 우스꽝스러웠다. 정말 춥다, 배가 고프다, 무엇을 먹을까, 저것을 먹자, 여기 앉을까, 이제 저리로 가자. 이 정도의 대화에도 서로 깔깔거렸고 왜 그렇게 생각해? 같은 심화 대화에서는 인터넷 한독사전이 필요했다.


그래, 어쩌면 켄의 성실한 모습에 반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소중하게 조심스럽게 대해 주는 느낌이 좋았으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할때면 얼마가 되었든 느긋하게 기다려줬고, 자신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여러번 물었다. 내가 원하는걸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게 쉬운 것 같아도 남자들에게 이것처럼 어려운건 또 없지 않나. 물론 연애 초반에만 성실한 남자들도 있다. 그러나 연애 초반마저도 그렇게 못하는 남자가 수두룩한 세상이다.


아니면 오히려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살아온 세상이 다르게 느껴져서 좋아진 걸지도 모르겠다. 같은 한국말을 하는데도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 다른 말을 하면서 차라리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게 더 괜찮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길게 이런것 저런것 늘어 놓아도 사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무엇이 우리를 엮이게 했을까. 무엇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을수 있게 했을까. 여전히 나는 독일어가 어렵고, 독일인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 열심히 배운 독일어를 실수할때마다 느껴지는 절망감이 싫고 대화에서 어느 순간 소외되는 것이 싫어서다. 때로는 유쾌하게 어울리지만 여전히 목줄을 찬 기분이다. 실수를 할때마다 목줄을 저 깊은 곳의 내가 팍 하고 잡아당긴다. 며칠이고 되짚어가며 수정해 봐도 여전히 나의 독일어는 제자리다. 나는 참 꽤나 깔깔거리는 넉살좋고 부끄러움 모르는 성격이지만, 동시에 노력한 만큼 댓가가 따라주지 않으면 절망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요즘들어 언어라는 장벽에서 우리의 대화가 한결 쉬워진 것은 나의 독일어가 유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켄이 나의 어설픈 독일어를 따라 구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요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단연코 우리가 국제 커플이라서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한 남자와 여자 사이의 문제다. 늘 그렇다. 겉으로는 언어문제나 다른 문화로 생긴 오해 같아 보여도 실은 조금더 자상하게 대해주지 않아서, 너의 사랑을 느낄수가 없어서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국가를 초월한 사랑이니 언어를 초월했다느니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다. 그 표현에는 분명 뭔가 옳지 않음이 있다. 그것은 초월하는게 아니다. 연애라는 건 그냥 한 남성과 한 여성으로 만나서 어이쿠! 사랑에 빠져버렸네, 해버리는 거니까. 차종을 초월한 교통사고 라던가 지역을 초월한 소나기라는 표현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 무엇도 초월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사랑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이건 선택의 문제였다.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선택했달까.


이 관계를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카페에 둘이서 마주보고 앉아서, 나는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너와 대화를 할때 답답해. 그렇지만 네가 괜찮은 애같아.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조금 겁이 나긴 하는데 우리 이 연애를 시작해도 될까?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내심 나를 좀 더 강하게 꼬셔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이 시점도 이미 나는 선택을 끝낸것이었을까? 그러나 조금 더 겁이 많았거나 안정적인 연애만 하고 싶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연애다. 나는 이 멋진 남자를 포기하는 대신 첨벙 뛰어는 것을 선택했다.


얼마전에 켄과 영화 하나를 같이 봤다. #미스터노바디 그래, 나는 너의 안나이며 너는 나의 안나인것이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선택해왔다. 연애 몇년까지가 연애 초반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의 시작은 꽤나 로맨틱하고 똥꼬발랄하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틈도 없이 나는 그가 궁금하다. 내 표정 변화 하나에도 무슨 일인지 자꾸만 묻는걸 보면 아마 켄도 그런 모양이다. 결국 우리를 연결하는건 우리 그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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