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토요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케네스의 가족이 저희 가족을 저녁식사에 초대했었거든요! 사실 가족 유럽 여행 한달전쯤에 케네스의 어머니가 먼저 말씀을 꺼내주셨었어요. 제가 한참 신나게, '처음엔 이탈리아에서 만날거구요. 그다음은 스위스를 들렀다가 파리를 갈거예요. 그리고 이삼일만 독일에 머무를 거예요.' 하면서 수다를 떨고 있을때였어요. '여행 막바지에 독일에 온다면, 우리 집에 와서 저녁 식사 한끼 함께 하는 것은 어떻겠니' 하시더라구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라기도 했고 정말 감사한 말씀이었지만, 사실 좀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솔직하게 바로 말씀 드렸어요. 너무 좋을것 같은데, 한국에선 양가 부모님이 만나는 경우는 결혼전뿐이라 가족이 오해할것 같다고요. 저희가 이십대 초반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아도 매일 결혼해라 애 언제 낳냐 물어보시는 엄마때문에 선뜻 응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웃으시면서 독일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고 독일에 오는 저희 가족에게 식사를 대접하는건 본인에게도 굉장히 기분좋은 일이 될거라고 하셨죠. 바로 대답은 못드렸고, 저희 어머니께 잘 설명드려보겠다고 했었어요.
덧. 독일어로 대화한걸 한국어로 풀이하니 굉장히 공손하고 깍듯한 표현이 되네요. 실제로 저는 남친의 어머니를 부를때 이름을 부릅니다. 물론 아직 어색해서 마구 자연스럽게 부르진 못하지만요. 남친에게 제가 쓰는 말투와 남친 어머니(수잔)에게 쓰는 말투와 표현이 같아요. 좀더 공손하게 쓰고 싶은데 독일어 무능력자라 위의 한국어처럼은 못합니다. 남친과의 대화속에서도 수잔은 잘있어? 라는 표현이 너무나 어색하여 너의 엄마는? 이라는 표현을 하죠. 오히려 이 표현이 무례한것 같게 느껴진다하더라도 아직까지도 저는 이름을 도저히 막 부르질 못하겠어요. ㅠㅠ
나중에 남자친구에게 들어보니 독일에선 십대에 사귀는 첫번째 여자친구 가족들과도 식사를 함께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럼, 넌 도대체 식사를 몇번이나 한걸까ㅎㅎ ) 그렇지만, 저희 가족에겐 당연하게도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죠. 일단 저희 가족 입장에선 생판 남인 분들에게 집들이도 아닌 정식 저녁식사 초대를 받는거니까요.
엄마한테 슬쩍 말을 건네봤었어요. 우리 독일에 머무는 이틀중에 하루는 남자친구 집에서 식사하면 어때? 이렇게요. 그랬더니 바로, 왜 결혼하려고? 하시더라구요. 이 아주머니, 당연하지만 상당히 한국적이셔서요. 그래서 여차저차 이건 그렇게 대단한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가벼운 식사한번 어쩌구 저쩌구 했죠. 엄마도 좋다고 하시면서 마지막에는 네가 걔랑 결혼생각이 있구나,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여러번 설명했어도 결국엔 의미없는 짓이었던 거죠. 물론 저희도 미래에 대해 자주 이야기 나누고 계획을 세우고는 있지만, 제가 계획을 세우는 것과 엄마가 그렇게 여기는 것에는 뭐랄까 차이가 있는것 같달까요. 암튼 저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은 식사자리이고 싶었어요.
식사 당일, 길고 긴 여행에 지쳤던 저희 가족에게 새로운 제안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오전에 잠깐만 둘러보기로한 프랑크푸르트 시내 투어가 쇼핑때문에 한없이 길어져서 원래 7시에 약속되어 있던 식사를 전날 저녁에 7시반으로 한번, 당일에 8시로 다시한번 변경했거든요. 남자친구 가족들 생각으론 저희가 저녁식사후에 다시 저희 집으로 돌아가는것이 좋지 않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사 후엔 그냥 간단하게 본인들 집에서 하룻밤 머물고 가라더군요. 세상에, 식사도 어려운데 하루를 머물라니. 명절때 친척들 집에서도 자는건 불편한건데 말이죠.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그냥 받아들이기 어렵고, 가족들도 한사코 거절을 했지만 남자친구가 아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더라구요.
' 저녁식사를 초대받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 새로운 경험이라면, 저녁식사후에 하룻밤 머물고 가는것도 아주 좋은 경험이 될거야. 게다가 독일에서는 일반적으로 늦은 저녁에 손님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는건 위험하고 무례하다고 생각하거든. 식사를 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주로 식전 가벼운 샴페인, 전식, 본식, 후식, 와인 한잔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두세시간 걸려요.) 집에서 머물고 가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도 식사를 서둘러 준비하거나 마무리 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 편하게 느껴질거야. 게다가 우리가 너네 가족을 다시 너네 집까지 바래다 주어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잖아. '
위의 말 그대로 가족들에게 번역해서 알려줬고 가족들도 에라 모르겠다. 알겠다 그리하자, 그렇게 결정이 되었습니다. 남친 집엔 손님방이 따로 있고 거실도 이용할수 있어서 제가 사는 WG (하우스 메이트들과 거실과 부엌등을 공유하여 생활을 하는 집, 우리집엔 나를 포함하여 독일인 20대 4명이 더 산다.) 보다는 더 편할거라고 생각한것도 있는것 같았어요.
식사 전에 이미 삼일동안 저희 가족과 여행을 해본 케네스가 저희를 마중나왔습니다. 몸이 그 전날보다는 괜찮아 보였어요. 삼일동안 저희 가족과 여행다니면서 긴장 + 많이 걸어다녀서 감기몸살에 심하게 걸렸었거든요. 저랑 케네스 둘다 엄청 긴장했었습니다.
집안에 벨을 누르니 케네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중나와서 인사를 반갑해 해주셨어요. 차례로 여동생네 부부, 이모와 엄마가 인사를 했고 악수와 포옹을 번갈아 했어요. 다들 제가 알려준 구텐탁을 여러번 말했어요. 구텐탁(안녕하세요)이랑 당케쉔(감사합니다)만 하자고 그랬거든요. 여동생은 만나서 반갑다는 말과 제이름은~입니다, 정말 좋아요, 멋있어요, 맛있어요 정도를 외워갔어요. 가는 길 한시간동안 어찌나 달달 외우던지 고맙고 귀엽고 그랬습니다. ^^
환영인사후에 가볍게 샴페인을 마셨어요. 아쉽지만 저희 가족은 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술을 잘 하지 못해요. 저만 가득받고 나머지는 아주 아주 조금씩만 샴페인을 받았고 매제는 술을 한모금도 못마셔서 오랜지 쥬스를 건네받았지요. (매제라고 하니 이상하네요, 연애와 결혼년수를 합치면 십년차에 한살어린 동생이라 그냥 이름을 불러요. 매제도 저를 누나라고 부르고요. 워낙 어릴때부터 봐왔거든요^^;)
다들 자리에 여차저차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어요. 정말 많이 준비해주셨더라구요. 연어 스프가 전식으로 나왔고, 필리핀식 고기 요리와 독일식 빵과 파스타가 나왔어요. 여행의 피로가 풀리는 맛이라며 어머니가 연어스프를 극찬하셨었어요. 본식엔 밥도 따로 있었는데 거기에 젓가락까지 저희 식구 수대로 미리 준비해 주셨었어요. 저희때문에 미리 마켓에서 몇개 더 구입하셨다고 해요. 제가 나이프질이 서툴러서 남자친구 집에서 여러번 젓가락을 사용했던걸 기억해주셨었나봐요. 제가 좀 촌스럽게도 한국서 치킨과 피자도 젓가락으로 먹는 인생 30년을 살아서 그런지 나이프질은 여전히 굉장히 서툴거든요. 특히 생선을 포크로 발라먹는건 정말 식은땀이 날정도예요. 후식으론 필리핀식 꿀과 과일을 넣은 달콤한 요거트 같은걸 준비해주셨었죠. 혼자서 다 준비하셨을텐데 정성스럽게 차려주셔서 모두들 감사하게 먹었답니다.
식사중에 오고간 이야기들도 재밌었어요. 여동생이 한시간 동안 열심히 배운 독일어로 레카! 제어레카! (맛있어요! 정말맛있어요!)를 엄지를 내밀며 말하자 다들 깔깔거렸고, 이것좀 더 드셔보시라고 권해주시는 남자친구의 어머니 덕에 모두 편안하고 정겹게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저는 한국어와 독일어 사이에서 통역을 하느냐고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어요. 나중에는 제 통역 없이도 손짓 발짓으로 모두 말이 통하는것처럼 보이던데 이렇게 서로 깔깔 거리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될줄 알았다면 미리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았었을 거예요.
엄마, 이건 무슨무슨 음식이고 필리핀식으로 만든거래. 저희 엄마가 이거 정말 맛있다세요. 등등 오는말 가는말 모두 통역을 하는데 분위기가 좋고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아서 오히려 저 혼자 식사 초대 받았었을때보다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독일인들 사이에 혼자있을때는 독일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에서 소외되거나 다시 물어볼 타이밍을 놓치는데, 이번엔 오히려 제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줘야하니 제가 이해할수 있는 말만 해주시고 천천히 설명해주셔서 되려 저도 부담이 적었습니다. 오히려 가족들의 표현을 독일어로 온전히 전할수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오역에 의역이 난무하는 실력없는 통역사였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들 신경도 안쓰고 어쩜 그렇게 웃고 떠드는지요.
서로 다른 문화라서 어떤것이 예의바른것인지 좋지 않은 행동인지, 실수하지 않으려고 만나기 전에 가족들에게 조금 알려주었었어요. 예를들어 면을 먹을때는 후루룩 하지 않고 먹어야 한다고 했기때문에 저희 가족모두 파스타를 조금은 조용하게 먹었지요. 그래도 소리는 후루룩 후루룩 여기저기서 났지만 케네스의 집에서도 한국에서 후루룩 먹는건 맛있다는 표현이라는걸 알고 계셔서 서로 이해할수 있었어요. 뭐, 그런데 그런걸 유난히 신경썼던건 저와 케네스뿐이었던것 같아요. 말씀드렸던대로 격없이 서로 하하호호 아주 재미났거든요.
식사를 끝낸뒤 우리가 선물한 소주를 맛본 남친 가족. 그리고 와인 한잔씩 맛보게 된 우리 가족들. 순서대로 케네스의 아빠, 매제, 여동생, 이모, 엄마, 케네스의 엄마, 남동생. 그리고 뒤에 얼굴이 반쯤가려진게 나, 옆엔 케네스. 참고로 엄마와 이모는 쌍둥이다.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조용히 피아노를 먼저 연주하시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식사를 끝난뒤에 모두 거실에 모였었습니다. 그때 저희가 방문 선물로 건네드린 팔찌와 화요(고급소주)를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들고오셨어요. 그리곤 팔찌를 직접 채워보셨고 잔을 준비해서 식구들이 모두 소주를 한잔씩 마셔보시곤 정말 맛있다고 하셨어요.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질이 떨어지지 않는 선물을 고르느냐고 엄청 고민했었는데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피곤했지만(3일내내 파티를 즐겼다고 함) 기분이 좋아진 남동생이 이것이 피아노연주다!를 보여주었어요. 남동생은 현재 밴드에서 피아노를 치거든요. 그래서 지하실엔 음악실까지 따로 있어요. 엄마와 이모가 한동안이나 남동생에게 빠질정도로 아름다운 연주였어요. 자꾸만 멋있다는걸 통역하라해서 반밖에 하질 않았는데도 제가 민망할 정도였어요. 한국어로 어머 멋있다, 왜이렇게 피아노를 잘치니, 잘생겼네 등등 다양한 표현을 쿨하다 듣기좋은 연주였다고 한다 정도로 통역했죠. 이미 엄마와 이모얼굴이 아이들처럼 반짝이는 상태였거든요. 어쨌든, 얼마전에 교통사고로 팔을 수술해서 불편했을텐데도 저희 가족들을 위해 두곡이나 쳐주다니, 저역시 정말 완전 감동했어요.
오랫동안 기다렸고 긴장했던 독일에서의 저녁식사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많이 피곤해진 가족들이 서로 잘자란 인사를 건네고 각자 방으로 가서 잠을 잤죠. 남자친구의 말대로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면 엄청 힘들었을거예요. 대중교통도 없을 시간이었고, 멀기도 멀었으니까요. 가족들도 굉장히 편하게 느꼈고요. 말이 잘 통하질 않으니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는 없었지만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눌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만 늦잠을 잤는데 다들 씻고 준비한채 마루에 이미 다 모여있더라구요. 일찍부터 또다시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신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조금은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이미 너무 늦어버렸더라구요;; 그냥 컵이랑 접시만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정도만 도와드린뒤, 모두 모여 다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아침도 저녁식사 만큼이나 화기애애 했어요.
빵과 밥, 어제 먹었던 음식 약간과 쨈 등등 커피 한잔을 하면서 여유롭게 식사를 즐겼죠.
헤어지는 시간이 되기 전에 간단하게 다같이 사진을 찍고 오랫동안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몇번이나 드렸는지 모르겠어요. 다음번에 꼭 모두 한국에 오셔서 저희가 대접할수 있게 되기를 모두들 바랄 정도였죠. 엄마가 감사하다고 하면 제가 한번 통역하고, 너무 즐거웠다는 말을 다시 통역하고 나면 이모가 감사하다는말을 또 제가 통역해야 했기때문에 정말 길고 긴 인사였어요.
꿈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 이제서야 피로가 풀리기 시작해요. 가족들 모두 한국으로 잘 돌아갔고 유럽에서 찍은 사진들을 카톡으로 주고받느냐고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읽지 못한 메세지가 금방 몇백개가 되고 말죠. 어젯밤에 남자친구와 통화하며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너와 나의 사이의 걱정이었는데 그게 사라져 버렸다구요. 저는 이게 국제연애라는 걸 신경쓰지도 못하고 지내다가도, 그냥 불쑥불쑥 엄마가 너 그 외국인이랑 거기서 살겠다는거야? 이렇게 물어보면 뭐랄까 한계? 제한선?같은게 느껴져버렸거든요.
사실 이번 만남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남자친구에겐 여러번 설명했었어요. 한국에선 가족이 싫어하는 사람과 진지한 관계를 맺는건 힘들잖아요. 그래서 무조건 저의 가족들이 제 남자친구를 좋아해줬으면 했거든요. 가족들이 지지하는 만남이 모두에게 행복하니까요. 제가 그렇게 설명했기때문에 남자친구가 감기에 걸려버린걸지도 모르겠어요. 미안하고 너무 고마워요.
독일에서 1년만 놀다오겠다던 딸이 조금만 더 공부하겠다며 1년반을 더 있겠다고 하질않나, 한번도 국제연애를 해본적이 없는 애가 갑자기 난데없이 필리핀 남자를 만나서는 평생 독일에 살수도 있지 않냐고 하질않나... 우리 엄마에게도 쉽게 받아들일만한 상황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는 영어를 못한다며 외국인은 만나지 말라고 칭얼대던 여동생도 이제는 남자친구에게 켄켄! 거리면서 잘 따르구요.
결론은, 걱정이 한움큼은 확! 줄어버렸네요.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쓸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제게는 너무나 뜻깊고 반가운 소식이라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보고 싶었어요. 단 몇시간동안의 일인데도 정말 많은 대화가 오고갔거든요. 그 모든것을 다 담아낼수 없어서 오히려 아쉬울 정도예요.
혹여나 국제연애를 하시는 분이나 망설이시는 분들이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응원합니다. 한국에서의 국제연애는 해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독일에서의 국제연애보다는 훨씬 힘이 들겠지요. 가끔 만나는 한국분들에게 무례한 말을 들으면 저는 굉장히 화가 나거든요. 그런 말을 제게 하는 사람이 한국인 뿐이었기때문에, 무례한 말을 들을 가능성이 더 큰 한국에서였다면 저는 이 만남을 더욱 더 고민했을것 같아요. 그래봤자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이라는게 계획처럼 되거나 생각처럼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꾸벅! 미루고 미루고 있는 가족여행글을 다시 써보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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