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 드디어 5월 초에 이사를 하고 둘만의 보금자리를 하나씩 완성해 가고 있어요. 독일도 집을 구하기가 최근엔 굉장히 어려워져서 3개월에서 5개월정도 돌아다닌 것 같아요. 이메일을 쓰고 답장을 기다리고, 방문약속을 잡고 방문후에 결과를 기다리고.. 한국보다 이사 절차가 까다로운 독일이라 징그럽게도 오래 걸렸습니다.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으니까 정확히 6개월만에 집을 구하고 계약했네요. 약 30개의 집을 방문했어요. 6개월 내내 모든 주말은 엄청난 테어민 ( 방문약속 ) 으로 꽉꽉차서 여유가 하나도 없었죠.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게 된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저는 결혼 전 동거에 대해 편견 없이 살아왔어요. 여동생 부부와 부모님도 결혼 전 동거 기간이 길었거든요. 남동생은 현재 여자친구와 장기간 동거 중이구요. 이런 분위기속에서 자라와서 그런지 딱히 유럽이나 외국의 문화라 동거를 시작한다기 보다 저희는 그냥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것 같네요. 간혹 한국 분들이랑 대화하다 보면 뜨악할정도의 보수적인 반응을 봐왔어서 어느 정도 한국에선 아직까지도 결혼 전 동거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제게 동거란 결혼 자금을 모으고 미리 같이 살 집을 정한다는 느낌이 큰 것 같아요. 독일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남자친구는 이미 세번정도의 동거 경험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 세번 모두 딱히 결혼을 목적으로 동거를 했던 것은 아니었구요. 남자친구의 친구들 중에는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 먼저 갖는 경우가 많아요. 이 경우 나라에서 아이에 대한 복지나 대우가 결혼한 부부의 자녀들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문화적인 이유로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결혼 후 받을 수 있는 세금감면을 못 받을 뿐이죠. 심지어 최근 임신을 한 남친 친구네 커플은, 서로 아이를 갖고 싶어했고 계획하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결혼을 원하는지는 서로가 확신이 없을거라고 생각해서 결혼 계획은 세우지 못했었대요. 최근에야 서로 결혼 생각이 간절했다는 걸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듣게 되어서 곧 결혼도 할 예정이라네요. 음, 이 이야기를 듣고 참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이와 결혼에 대한 계획이 함께 진행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함께 진행되지 않는게 자연스러운거구요. 아무래도 한국에선 동거까지는 몰라도 자녀계획은 항상 결혼 후가 되는데 말이죠.
어쨌든, 최근의 저희 커플도 참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관계내의 변화라는게 가끔은 참 신기해요. 너무 서서히 변해서 눈치를 채지 못하는데 얼마전의 기억으로 되돌아가 보면 아주 오래전 일인 것처럼 낯설도록 다르니까요. 얼마전에 또 다시 남친과 사소한 일로 다투었는데요. 이 다툼동안 저의 심리변화에 스스로 크게 놀랐어요. 이전에 그토록 문제가 되던 일들이 이제는 더이상 전혀 타격이 없을 정도로 아무 일이 아니게 되었고, 이전에는 사소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되려 크게 느껴지거든요.
연애 초반에는 이런 싸움이었어요. "너 정말 나를 사랑하긴 하니?" 그러니까, 애정 다툼이었죠. 주된 목적은 단순하게 상대방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 이었구요. 이를테면 너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작성하여라! 10분 이내! 의 문제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시간과 열정과 노력을 쏟아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테마였던 '사랑 확인하기' 작업이 세상 덧없이 느껴지는 거예요. 이제 알거든요.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태풍이 오나,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아, 너는 나를 사랑하는 구나! 그리고 나는 너를 이루 다 말할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며 네가 나의 인생의 가장 큰 의미이다! 까지 그 어떤 부연설명이 없어도 이미 존재만으로도 확인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철 지난 테마가 되는 거죠.
사실 그 다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사랑을 확인하게 되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게 되면 우리의 관계는 이를테면 '완성형'에 가까워질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수많은 드라마, 책, 시, 노래에서 '사랑 확인하기' 테마에 대해 얼마나 많이 이야기 하고 있나요? 아마도 이 테마에 제가 온 힘을 쏟아 집중했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만 제 눈에 보였던 걸지도 몰라요. 이제까지는 경험해본적이 없었던 다음 단계로의 관계 발전이 제게는 너무나 신기하고 신세계처럼 느껴져요.
이제 저는 바라지 말아야 할, 어쩌면 너무 큰 무엇을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처음에 서로 의심없이 사랑하기가 원대하고 불가능한, 마치 판타지 같은 바람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바람도 지금 제게 그렇게 느껴지고 있어요. '사랑 확인하기' 처럼 쉽게 표현하자면 '긍정적인 관계 구축' 으로 말할수 있을 것 같아요. 연애 초반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걸 좋아하고 이런건 싫어해' 라고 설명하던 자기 설명시간이 지나 '네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너를 사랑한다.' 라는 자기 감정 확인, 그 후에 '내가 이러한 사람이라도 나를 사랑할거야?'라는 신뢰감 형성의 시간을 보내왔어요. 이제는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이니?' 라는 질문이 던져지는 거죠. 이런 질문이 무의식 중에 끊임없이 던져지니까 이전에는 제가 못하는 것이나 자신없던 것에 솔직하게 말하거나 나를 표현하는 것이 다였다면, 이제는 제가 잘하는 것에서는 인정을 받고 싶고 못하는 것이라도 평가가 아닌 격려를 받고 싶어지게 되었어요. 상대방의 존재감이 더 커진탓인지 작은 말에 큰 상처를 받게 되기도 해요.
지난 날엔, 나말고 다른 여자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걱정을 했었고 나의 옷차림이나 화장에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 말예요. 지금은 그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든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하고, 대신 나를 언제나 긍정적으로 인식해주기를 기대해요. 이것이 새로운 관계구축으로 인한 자아실현이 목적일까요? 아니면 그보다는 새로 주어진 지위, "파트너" 라든가 "반려자" 로서도 성공적이고 긍정적으로 해내고 싶은 개인적 욕심일까요? 아니면 이 둘이 같은 뜻인가요?
최근에 심리학책과 철학책을 번갈아 가며 읽고 있는데요. 동시에 리더쉽에 관한 자기계발서도 함께 병렬독서를 하고 있어요. 이 세가지에서 말하는 자아실현이나 컴플렉스, 영향력 증대라는 모든 테마가 제 파트너에게 그리고 파트너로서의 제 자신에게도 요구되는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장이나 꿈을 실현하는데에서만 작동되는게 아니라 우리의 관계내에서 이 모든 테마가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인다는게 재밌는 것 같아요. 처음엔 이런 생각들이 다음 단계로의 이동이라고 생각치 못했어요. "이제 네가 날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궁금하지 않아.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건 확신해! 다만 이젠 내가 너한테 좋은 사람인지가 중요해." 라는 타툼 후에 남자친구가 환하게 웃으면서 "내 생각엔 이게 우리 관계가 다음단계로 이동했다는 증거같아." 라고 말하더라구요. 그 때 우리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탁 와닿았어요.
다음 단계는 뭘까요? 청소기 하나를 구매하려고 해도 3일을 싸우고 고민하면서 맞춰나가는 건 연애초반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같이 함께 쓸 청소기를 산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만요. 상처 받는 부분이 '내가 너에게 좋은 사람이 아닌것 같아 질때' 이거나 '네가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가 되었다는게 아직은 소모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이 논쟁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것 같다고 느껴질 때' 에 대한 논쟁처럼 소모적으로 느껴지려면 또 얼마간의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게 진짜 다음단계로 잘 건너온 건 맞을까요? 아니면 보다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찾아야 할까요?
매번 대화하면서 우리는 아직도 서로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우리의 긍정적인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엔 저희 둘 다 전적으로 동의해요. 지나간 관계 속에서 받았던 상처들을 보듬어서, 스스로 인식하는 가짜 단점을 단점이 아니라고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보다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제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예요. 남자친구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고 서로 좋은 사람이 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으면 좋겠어요.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칠수 있는 존재가 남자친구이고, 남자친구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도 저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관련된 지난 글들은 아래 링크에서 봐주세요 :)
너와 나의 연결고리 - 연애 초반 문화 차이와 언어 소통에 관해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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