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 오늘 하루 잘 지내셨나요?
저는 무심결에 지나가는 '외로움' 감정이랑 다시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에 병원 추천으로 먹고 있는 약(비타민)까지 합쳐서 영양제를 다섯 가지 정도 먹고 있어요. 아프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예민해지고, 감정적이 되는 것 같아 부단히 다시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건강해야 마음이 넓을 수 있겠더라고요. 특히나 밖으로 나갈 일이 많이 줄어든 일상이라, 햇볕도 보기 힘드니까요. 시간을 내서 더 밖으로 나가야 하죠. 제 블로그 이름처럼 저의 은둔형 외톨이 같은 모습은 정말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의 유치원 때부터 형성된 성향 같아요. 조금 자아가 빨리 형성되기도 했고, 생각이 깊은 꼬마였거든요. 다섯 살 이후의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많이 기억나는데 그때 했던 생각들이나 과정이 제법 지금이랑 비슷한 것이 많아요. 유치원에 갈 때 빼고는 집에서 책만 읽었던 아이였어요. 동생들은 골목을 거의 휩쓸다시피 하면서 옷이 더러워져서 들어오면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는데, 저는 유치원 졸업까지 유치원복이 거의 새것처럼 깨끗했거든요. 미끄럼틀이나 그네도 잘 타지 않고, 그냥 책만 읽는 꼬마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라고 다르지 않았어요. 그냥 집에서 책이나 읽는 게 제일 재밌었고, 친한 친구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내야겠다,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또래 애들이랑 잘 지냈지만 뭔가 머릿속에 애들이 너무 애기들 같고 저만 어른 같다는 그런 생각을 어릴 때 내내 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삼촌이 갑자기 산타클로스를 안다며, 뭐가 갖고 싶은지 자기한테만 몰래 말해보라는데 누가 봐도 아빠가 시킨 것 같았죠. 조금 아이처럼 보이고 싶어서 인형을 사달라고 했어요. 부모님이 걱정이 좀 많아지실 때였거든요. 제 말투나 행동이 엄청 조신한 어른 같아서요. 인형 선물이 기뻤다기보다는 부모님이 안심하셔서 다행이었던 기억이 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도 잠도 안 자고 책만 읽어서, 혼이 많이 났었어요. 수업시간에도 수업은 듣지 않고 책만 읽어서 여러 번 혼이 났는데 잠들기 전에도 책을 끌어안고 잠을 자지 않아서 몰래 랜턴을 이불속에서 켜가면서 읽었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었어요. 이미 초등학교 4학년 때 아Q정전이라던가 상록수, 프랑스 대혁명 같은 책들을 읽었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책을 좋아하던 시기였고, 초등학교 졸업하면서 책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들어서 그때만큼 읽어본 적은 아직도 없어요. 중학교 때는 처음 연애도 해보고, 친구들도 제대로 사귀어 봐서 외향적이거나 자기주장이 강한 지금의 성격이 만들어졌고요. 중학교 졸업 바로 전부터 고등학교 때 내내, 연극에 빠졌죠. 연극만 생각하고, 희곡만 읽었어요. 그 열정이 20대의 전부였고요.
이렇게 인생 전반에 걸쳐 뭔가에 깊이 빠져서 그 외에는 잘 시도해 보지도 않았고, 늘 집안에 처박혀있는 취미(독서)에만 빠져있었으니까요. 지금도 사실 쉬는 날 밖에 나가는 건 참 많은 용기가 필요해요. 연극을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과 20대 때에 그 용기는 많이 배웠죠. 어쨌든 무대예술은 혼자 만들어 낼 수 없잖아요. 모노로그도 해봤지만, 그 안에도 많은 스텝과 다양한 피드백이 필요해요. 극본 혼자 쓰고 연출까지 다 혼자 해도 드라마트루기와 조명/음향까지 혼자서 해낼 수는 없잖아요. 뭔가 제가 사람다워졌다면 이건 다 연극 덕분입니다.
이렇게 길게 제 이력 아닌 이력을 나열한 건 그거예요. 그러니까, 적어도 전 혼자 있는 데는 선수라는 거죠. 외롭다는 감정은 입 밖으로 내기 전엔 그냥 잠잠한데 왜 밖으로 내버리면 바로 눈물이 고일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까요? 예전 연기 선생님께서 저한테, 누구나 다 외로운 건데 모든 예술가는 이 외로움을 잘 이용해야 하고 잘 다스려야 한다고 했어요. 외롭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많은 예술가들이 그런 말을 하죠. 배고파야 예술이라거나 괴로움이나 인생의 쓴맛을 알아야 한다거나.. 그런 말들이요. 어느 정도 동의해요. 고독에서 오는 예술적 영감만큼 강한 게 있을까 싶거든요. 저도 외로워야 그림도 그리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오랫동안 쉬었던 연기도 하고 싶어요. 특히 책을 많이 읽게 되죠. 어떤 결핍이나 욕구가 있어야 행동하게 되니까요. 자아 표출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위해선, 고독이나 애정 결핍이 참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여기에 관한 작은 일화도 있는데요. 연기를 처음 배우러 가거나, 연기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 그룹에선 처음엔 자기소개 같은 작은 소극을 하기도 해요. 자기 독백처럼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핀 조명 아래서 혼자 즉흥극으로 표현해내는 기초적인 훈련인데요. 들어보면, 다들 외롭게 자랐어요. 편부모는 기본이고 고아라거나 찢어지게 가난했거나, 넉넉한 살림이었어도 방치된 아이들이 모여있죠. 유난히 마음 한구석 아픈 아이들이 참 많다 싶었어요. 누구나 그런 아픔 하나씩 있지만, 20살 초반 아이들이 연기를 꿈꾸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랄까요.
예전엔 슬프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책을 읽었는데, 요즘엔 글을 써요. 블로그에도 쓰지만 일기장에 참 많이 써요. 누가 읽어주는 글은 사실 블로그 말곤 쓸데도 없고, 잘 써내지도 못하는데 쓸 곳이 일기장밖에 없어서요. 책을 많이 읽었다고 글을 자동적으로 잘 쓰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요즘엔 많이 읽었다고 할 만큼 읽지도 못하니까 더 해요.
왜 외로운 걸까요?
분명히 하자면, 외로운 것이 곧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녜요. 아까 말한 입 밖으로 외롭다고 표현할 때 눈물이 고여 버리는 이유가 꼭 슬프기 때문은 아닙니다. 외롭다는 표현 자체에서 오는 뭔가를 찌를듯한 통증에서 와요. 그것이 우울감이나 슬픔이란 감정과 다른 건, 저 깊게 어떤 결핍이 있음을 깨닫고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막막함에서 오는 당혹감에 더 가깝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외롭기 때문에 우울감을 느끼거나 슬퍼질 수는 있겠지만, 외롭다고 꼭 우울해지고 슬퍼지진 않는다는 거죠. 지금의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우울하지 않아요. 슬프지 않아요. 그렇지만 외롭습니다. 이 외로움을 떨쳐내고 빨리 잠이 들고 싶어요. 동시에 어릴 때의 기억을 잠시 꺼내볼 수 있었고, 이 외로움이란 감정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 같아 잠시 기쁘기도 해요.
날이 밝은 대로 고독이나 외로움에 대해 철학자들은 어떻게 썼었는지 찾아봐야겠네요. 운이 좋다면 이에 대한 좋은 문학도 발견할 수 있겠어요. 오늘 외로웠다고 내일도 꼭 외로울 거란 법은 없지만, 오늘 밤은 그렇네요. 유독 엄마 품이 그리운 날인데, 한국은 가끔 너무 멀게 느껴져요.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만 외로워지는 건 아니랍니다. 제가 외롭다고 하면 자기 탓인 줄 알고 너무 미안해하는 남자 친구가 오히려 미워요. 외롭다고 말도 못 하게 되었으니까요.
내일은 또 좋은 밤이 오길 바라면서 마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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