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고 연극쟁이가 단순한 회사원으로 산다는 것은, #2

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 문득 오래전에 블로그에 끄적였던 글이 생각이 났어요. 먼저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면 저의 지금의 글이 더 이해가 잘 되실 거예요.

 

2017/11/02 -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고 연극쟁이가 단순한 회사원으로 산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회사원'이라는 타이틀을 걸어놓는 게 참으로 어색하지만, 네. 저는 현재 독일의 한인 회사에 매일 출근하는 회사원입니다. 예술가로 10년을 살면서 친구들에게 자주 했던 이야기가, 나는 평생을 같은 일을 하는 회사원으로 사는 건 힘들 것 같아. 회사원들은 참 대단해! 였거든요. 악의 없는 표현이었고 말한 그대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와 다른 무언가, 삶의 가치가 전혀 다른 사람들, 다른 종류의 인생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그런 삶을 살고 있네요. 2014년 드라마 '미생'이 방영할 때만 해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장인들 이야기 너무 멋있어! 이랬는데 말이죠. 참, 인생은 재미나요. 게다가 2017년 블로그에 위 링크의 저런 글을 끄적일 때만 해도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온통 물음표뿐인 상태였는데 이제 '연극쟁이'였던 시절은 먼 과거가 되었어요. 오히려 이제 연극을 한다 해도 어색할 것 같습니다. 음, 이거 어째야 하나요. 지금의 저는 회사원도 어색하고 연극쟁이도 어색한 중간 과정일까요. ^^

 

작년 여름, 켄과 함께 캠핑장에서 생일파티에 참석했을 때

독일에 워홀로 도착해서 처음 짧게 미니 잡을 했던 쇼핑센터를 지나, 2년간 음울한 사무실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던 여행사를 건너, 현재는 제법 복지가 좋고, 스타트업치고는 큰 한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약 2~30명의 참 좋은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하기는 정말이지 부끄럽지만, 따지자면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처음 해 보는 일, 처음 겪는 일, 처음 생각해보는 문제를 신생아처럼 부딪혀가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2018년 1월부터 근무하기 시작해서 이제 3년 차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회사에서 근무를 한적은 많아요. 서울암센터에서도 약 1년간, LG U+에서도 약 1년, 서울보증보험센터에서는 약 3개월.. 등등. 배우 생활을 계속 해나기 위해서 낮에는 회사를 가고, 저녁에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공연장이나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죠. 그러면서 계속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캐스팅이 되면 다니던 곳은 모두 그만두고 다시 공연을 하거나, 영화를 찍었습니다. 연극 공연의 경우, 퇴근하고 나서 연습을 하고, 공연시간도 저녁이라 낮에 직장을 다니면서 할만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1년씩이나 다닌 곳도 있는 거죠. 커리어(필모그래피)가 무엇보다 제일 중요했고, 어리고 열정이 넘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 당시 기준으로 제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을 매일 굉장히 열심히 하며 돈을 모으고, 어렵게 모은 돈은 꿈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어요. 연기학원, 무용학원, 연습실에 돈을 쓰느냐고 고시원에 굉장히 오랫동안 살았고, 스물다섯 살이 넘어서야 오랫동안 조금씩 모은 돈으로 처음 원룸을 얻었습니다. 원룸 생활을 하면서도 가스나 보일러가 끊겨서 아직 끊기지 않은 전기에 감사하며 드라이어기로 몸을 녹이며 잠에 들고, 라면 한 봉지를 아껴가며 삼일을 버텨본 적도 있어요. 전혀 후회가 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 10년이었습니다.

 

이런 제가 지금은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어요. 매일을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잠을 잡니다. 그 당시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독일의 아름다운 주택가에 위치한 제법 넓은 집에서 케네스라는 멋진 남자 친구와 함께 살고 있죠. 꿈도 꾸지 못하던 결혼을 준비하고 있고요. 사실 지금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와의 인연이 제가 이런 삶을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결정적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2017년의 제가 저 당시의 포스팅처럼 많이 헤매었던 것은 독일에서 살고는 싶지만 삶의 반을 차지하는 직장생활에서 만족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남자 친구 때문에 독일에서 살기로 결정을 했지만 지금의 직장을 구하지 못했더라면 독일에서 살고 싶어도 계속 살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저 글을 쓸 당시만 해도 이직을 생각하지는 않았었는데, 성공적인 이직이 평화로운 일상을 가져다준 것은 틀림없고 3년 전의 저보다 현재의 저는 제 하루에 보다 확신에 차 있습니다. 모두 안정적인 회사 생활 덕분이에요. 

최근 회사에서 많은 변화, 끊임없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직면하며 그간 경험해보지 않던 삶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상하관계의 인간관계를 맺는 것과 회사생활/조직생활이라는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는 문제들인 것 같습니다. 극단과 여러 번의 공연을 거치며 함께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협동 작업에는 제가 특화가 되어 있다는 생각에 빠져 살았었습니다. 개성이 강한 연출가와 스텝들, 특히 삐죽삐죽 날이 선 예민한 배우들과 함께 버텨간 오랜 시간들은 제게 보물과 같은 경험이었고 자만이었지만, 직장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생태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공연은 언젠가는 막이 내리며, 제 역할은 분명한 선 안에서 지켜졌습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빠르게 내장까지 꺼내 서로를 보여주고 극이 끝나면 자리를 떠나버리는 예술작업과는 달리, 직장에서는 서서히 알아가야 합니다. 예술처럼 속 알맹이까지 까네 놓으면 하나도 좋을 것이 없더라고요.

 

배우는 아픔을 꺼내면서도 이성을 지켜야 하는 직업이었는데 반해, 회사원은 아픔은 감추면서도 감성을 건드려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달라서 어렵습니다. 이제 '조직생활'이라고 불릴만한 곳에서 진짜로 일을 하는 것은 겨우 2년인데요. 저희 대표님도 제게 가끔 이런 말씀을 하세요. 그 정도면 다른 회사라면 대리급 정도라고요. 사실, 저희 회사가 직책이 따로 없기도 하고 회사생활 경험이 없어서 대리, 과장, 부장 이런 직책도 잘 몰랐습니다. 대리급이라는 말에 무슨 표현인지 몰라 네이버에 대리 몇 년 차를 검색해야 했습니다. 평균 4년 차에 대리라는데, 그렇게 따져보니 저를 많이 쳐주신 거더라고요. ㅎㅎ


능력에 비해 회사 내에서 많은 인정을 받고 있고, 인정받는 만큼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잘하는 법을 모르니 이리저리 부딪혀가면서 좀 멍청하게 배우고 있습니다. 심리학 책이나 철학책 등 인문서를 읽을 때, 이전에는 어떻게 이런 걸 표현해내야 하지? 라며 읽었었는데요. 요즘엔 부하 직원이나 상사들의 행동에 접목해가고, 판매 타겟층을 분석하는 데 활용해가고 있으니 제가 참 많이 변했습니다. 리더십이나 마케팅에 관련한 책은 평생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그런 책들에 관심이 많이 가고요. 그냥, 지금은 물건을 파는 일이 참 재밌습니다. 잘 팔면 더 재밌고요. 제가 결국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이 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당장 오늘에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거창한 것과 소소한 것 중 고르라고 하라면, 저는 아직도 속으로는 거창한 쪽을 고르면서도 소소 한 것이라고 대답하는 편인데도요.

 

물론 인생은 모르는 거라서, 제가 이런 글을 쓰고도 환경이 변해서 직업이 또 변하게 될 수도 있고 독일을 떠나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저는 독일에서 제법 괜찮은 한인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 니나입니다. 3년 전보다는 덜 슬프고, 많이 헤매고 있지 않아 다행이네요. 몇 년이 더 지나고 나면 저는 또 어떤 모습일까요. 물음표가 줄어드는 것이 다행이면서도 참 많이 섭섭하지만, 많은 물음표에 대답들이 계속해서 채워지겠지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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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in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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