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오돌뼈 _ 부족한 것 없어도 서러운 타향살이

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 지겨울 만도 한데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외로움, 향수병이 이제는 강하고 세게 한방에 오네요. 2018년까지만 해도 옅게 전체적으로 외로움 무드가 깔렸었는데요. 19, 20년이 시작되는 지금은 다 극복했어! 하고 자신 있어 할 때쯤 머리통을 한대 딱 걷어차는 방식으로 찾아왔습니다. 크리스마스도, 12월 31일도, 1월 1일도 제법 가뿐하고 즐겁게 보내고서 정말 극복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1월 24일, 설날에 터져버렸습니다. 그냥 집에서 오돌뼈 볶다가 세 시간을 울었습니다. 

남자 친구와 함께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한국 마트인 Y-마트에 들러서 이것저것 장을 보고 나왔어요. 처음 가본 Y-마트엔 정말 없는 게 없고, 너무나 한국 같아서 모든 물건들이 다 반가웠어요. 특히 곱창과 오돌뼈가 냉장으로 판매되는 모습에 감격을 했거든요. 다음날 해먹을 잡채와 떡국거리에 오돌뼈에 곱창까지 얹어서 알차게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청하를 차갑게 세팅해놓고 프라이팬에 불을 달구며 룰루랄라 종이 껍질을 벗기는데 이 문구 하나가 딱 눈에 들어왔습니다. "친구가 생각나는 이 밤, 그리움 하나 오돌뼈 하나"

 

나를 울린 "친구가 생각나는 이밤, 그리움 하나 오돌뼈 하나" 

친구가 생각나서 오돌뼈를 산 것도 아니었고, 딱히 그간 뭐가 그립다고 여긴 것도 아닌데 이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울리던지 터져버린 눈물이 그 칠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한 번 울면 그치지 못하게 만드는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휙 지나가며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았습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먼 곳에서 가족도 친구도 없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모든 씁쓸한 마음이요. 

갑작스럽게 터져버린 울음에 당황한 케네스는 당연하게도 어쩔 줄 몰라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느냐, 무슨 일이냐 묻는데 설명도 못할 정도로 감정이 휘몰아쳤습니다. 조금 진정되면 여기에 이런 게 쓰여있어서.. 말하다가 또 울고, 아니야 너는 잘못한 게 없고.. 말하다가 또 울고. 

한국에서 배우로 10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복받치는 감정을 연기하는 것은 어쩌면 익숙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극적인 상황이라는 게 쌓고 쌓여서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무대에서 보다 연극적인 표현을 위해 가끔은 갑자기 터질듯한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감정을 일상적인 상황에서 부딪히는 것은 흔하지 않습니다. 울음을 멈추기 위해서 이건 분명 호르몬 때문 일거야, 별로 대단스러운 말도 아닌데, 다른 이유가 있나 등등 별생각을 다했지만 저 스스로도 저의 '그리움'에 대한 서러움을 한 번에 잘 설명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독일에 오기 전에, 혹은 독일에서 평생을 살겠다고 결심하는 와중에도 독일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이 '외로움'과 '그리움'이라는 경험담을 참 많이도 들어보고 읽어봤습니다. 갓 독일에 와서 한 달, 3개월만 되어도 시작되는 그리움이 10년이 되어도, 30년이 되어서 한국에서 산 날보다 많아지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그 그리움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아가더라고요. 정신이 제법 건강(?)하고 그리움 시즌이 아닐 때면 에이, 그래도 나는 괜찮아하다가도 제가 이렇게 터져버리는 날에는 그래, 여기서 뭘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사나 싶어 당장 한국에 가고 싶어 집니다. 심지어 작년엔 두 번이나 한국을 다녀왔고, 가족도 독일에 찾아와서 이렇게까지 힘들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도 그러네요. 

일명 '오돌뼈 사건'은 제게도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에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였고, 솔직하고 숨김없는 성격이라 자부하는데도 내가 나를 속일 때도 있음을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또 다른 무언가를 스스로에게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를 되돌아보며 다시 한번 차근차근 독일 생활에 대한 마음가짐을 되짚어 봐야겠습니다. 지금의 저의 일상을 지탱하는 그 모든 것이 참 감사한 요즘입니다. 제가 이 곳에서 선택한 직업, 선택한 사람, 선택한 보금자리 모두 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활을 위해 포기한 다른 삶에 대해 온전히 그리움을 인정하고, 작별을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작별 인지도 모르고 쉽게 떠나온 한국에서의 직업, 사람, 보금자리에 대해서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향수병이라든가, 그리움, 외로움에 대한 징징거리는 글은 저희 꾸준한 포스팅 테마가 될 것 같습니다. 매년 한 번씩은 쓰고 있네요:) 이번에도 잘 극복하고, 다음에 찾아올 때는 너무 갑작스럽게 오지 않도록 잘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10/29 - 근황이라고 쓰고 신세한탄이라 읽는다

2017/11/09 - 국제연애, 해외생활 중 향수병을 사랑으로 이겨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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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in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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