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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근황

뒤늦게 쓰는 '2020을 보내고 2021을 맞이하는' 글

by 니나:) 2021.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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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

 

연말에 갑자기 여러 가지 일들이 휘몰아치면서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오래 기다렸어요. 그간 비공개 글들이 마구 쌓여갔고,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니 공개하지 않고 혼자 가지고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예상치 못한 일들 투성이지만, 어느 정도 흔들림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과, 크게 흔들려서 중심을 잡기까지 다시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은 다른 것 같아요. 

 

세상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다가온 역병은 물론 엄청 큰 일이지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제게는 크고 작은 변화만 있었을 뿐 큰 흔들림이 있진 않았어요. 제게만 다가온 불행도 아니잖아요. 독일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마스크 쓰고 거리두기 유지하고 만남은 줄였죠. 한국 방문은 취소하고 결혼은 미루고 여름 여행 계획도 취소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지내니까 큰 타격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생활이 좀 단조로워져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들을 여러 가지 시작했어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글을 더 많이 쓰고 있어요. 퍼즐도 하고 드라마도 더 많이 봐요. 

 

오히려 최근에 큰 흔들림이 생긴 건 '사람' 때문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변화와 주변의 웅성거림 때문에 굉장히 당황했지만 지금은 다시 안정기입니다. 화가 나거나 슬픈 감정은 아니었고 말 그대로 많이 당황했어요. 당황스러운 감정이 화가 난 것처럼 보이거나 허둥지둥하는 것처럼, 바보처럼 느껴져서 스스로에게 중심 잡아야지~ 하고 속삭여주곤 했습니다. 이럴 땐 오히려 사건 그 자체보다는, 다 같이 한 마디씩 해주느냐고 일이 소란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다시 일상이네요. 다행이에요.

 

독일 현지 체감상으론 약 3월 말~4월 초부터 코로나의 영향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그 이전까진 한국 상황을 걱정했지, 유럽까지 심각해질 줄 몰랐다거나, 독일은 안전하겠지 싶었으니까요. 그러다 9월부터 지금까지가 가장 제제가 강한 것 같아요. 특히 새해를 맞은 1월은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가족 외 다른 사람은 1명밖에 만나지 못하니 더 크게 느껴져요. 식당이나 상점들이 모두 닫힌 뒤부턴 남자 친구 부모님 댁에 거의 매주 방문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려워졌으니까요. 

 

요즘은 등산 많이 하고요, 그 외엔 갈 데가 없으니 주로 집에 있어요. 덕분에 살도 많이 쪄가네요.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더 자주 연락하려고 노력했는데, 많이 못한 것 같아요. 친구들도 더 많이 챙겨야지 했는데 시간을 충분하게 못 냈어요.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겐 안부를 물어야지 했는데, 늘 연락하던 사람들에게만 연락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2021년엔 좀 더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실 관계 맺는 게 정말 귀찮잖아요. 혼자가 편하죠. 가까운 사람이 많아지는 게 외로움이 덜해진다는 뜻은 아니고, 귀찮은 일이 많아진다에 가깝지 않나요?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운 건 매한가지고, 필요할 때 찾게 되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잖아요. 그래도,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서로가 살아가는데 자주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 마디 더 나누고 싶은 거죠. 순수하게요. 지치잖아요. 위로가 필요 없단 사람도, 그냥 농담 한마디 실없이 나누고 나면, 신경 쓰이던 일들이 별 것 아닌 작은 일이 될 때가 있으니까요.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냥 주변이 달라지죠.

 

책 한 권 읽는 게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제 영혼이 충만해지는 거라면, 사람에게 다가가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이죠. 인생에 도움이 되어서, 그 사람이 필요한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등등의 단순한 인맥 쌓기를 쉼 없이 하는 사람들의 영혼이 빈곤한 이유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과 에너지가 정말 쭉쭉 닳아가는 일인데 목적까지 순수하지 않다 보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그렇다고 칸트의 도덕 법칙까지 갈 필요는 없고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요. 목적 없이 알아가던 상대들만이 지금까지 제 곁에서 아무 바람 없이 남아주는 게 그 증거죠. 일로 알게 된 사람은 일이 끝나면 인연도 끝나고, 학업으로 알게 된 사람들은 학업이 끝나면 연락도 끊겨요.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그 사람이 좋아서 만나고 부대끼던 이들만 지금까지 남아 있어요. 그냥 그렇게, 목적 없이 더 다가가야겠어요. 들이대는 저를 받아줄지 말지는 당연히 상대편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여기저기 용기 있게 치근대다 보면 언젠가는 함께 2021년을 추억할 때가 오겠죠. 

 

2020년 먹은 마지막 음식 : 글루바인과 모닥불에 구운 마시멜로우, 2021년 처음 먹은 음식 : 샴페인과 숙취

 

얼마 전에 친구와 대화하다 보니, 문득 참 제가 겁도 없이 잘 들이대고 치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그 당시 친구에게 꼭 필요한 관심이었고 많은 치유가 되었대요. 옆에서 웃긴 이야기나 하고, 실없는 농담이나 던지면서 같이 시간 보낸 게 다인데 감사 인사를 받았어요. 이런 아름다운 경험이 다시 또 올까요? 여기저기 들이대다 한 사람만 더 만나도 인생이 확 달라지지 않을까요? 물론 적당한 거리는 둬야 겠지만, 한 걸음 먼저 다가서는 용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돈도 중요하고, 꿈도 중요하고 다 중요하겠지만 역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뻔한 이야기만 뻔하게 하는 날이 오겠지, 싶었는데 더 빨리 왔어요. 꾸던 꿈은 멀리 날아가 버렸고, 돈은 적당히 벌어요. 더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의 목표가 돈이 되면 그만큼 탁해지고 추해질 것 같아 수단으로만 부지런히 다가가려고요. 일은, 부지런히 노력하는 만큼 대가가 돌아 올 거라 그렇게 믿고 있어요. 얕은 수를 쓰다 헛걸음질 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너무 봐와서.. 하.. 그렇게 해봤자, 뭐가 남니? 싶어요. 결국엔 사람인데, 돈 벌기 위해 사람 버리는 것 만큼 바보 같은게 없잖아요.

 

저도 한 해 돌아보니 내가 올해는 얼마 벌었더라, 뭘 샀더라, 뭘 읽었더라, 뭘 봤더라.. 이건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가족들에게 연락 더 할걸, 친구들하고 통화 더 할걸, 편지 한 통 더 쓸걸, 올해는 결국 새로운 사람을 사귀지 못했네, 누구누구에겐 이런 큰 상처를 받았었지, 내가 상처를 줬던 사람은 없나.. 이런 것만 남았어요.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더 하고, 고맙다는 말 한 번 더 하는 거죠. 연말연시의 정리라고 할 것이 이런 감정들 뿐입니다. 

 

매년 새해 목표는 '더 감사하기' 였는데요. 올해의 새해 목표는 '더 다가가기'입니다. 기존의 '감사하기'는 코로나 시대엔 너무 수동적인 것 같거든요. 제 신년 운세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원하는 바 다 이뤄지리라 생각합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새해도 많은 감사함과 따뜻함이 있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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